피부를 벗기고 목은 쓰레기장, 두개골로 본 잉카 제국의 공포정치

칠레 안데스 산맥의 기슭에있는 고대 잉카의 마을, 이글레시아 콜로라다의 유적지는 어딘가 이상했다.


옛 쓰레기장으로 남아있던 잔반이라든지 토기의 파편 등과 함께 4개의 두개골이 발견되었는데....모두 몸이 없었다는 것. 매장 된 모습도, 저승에 가져갈 장식품 같은 것도 없다. 단지 두개골만 발견 된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런곳에?


그것들이 발견 된 것은 2003년. 이후, 고고학자는 수수께끼의 두개골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하지만, 최근 칠레의 국립 자연사 박물관의 연구원이 새로운 가설을 제창하고있다. 그것은 주민들에게 본보기로 목을 자르고, 잉카 제국의 공포 정치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 남미의 난동 시대에 천천히 확대되고 있었다는 잉카 제국


1400년대 후반부터 1500년대 초반까지, 남아메리카의 대부분은 동란의 시대였다.




안데스 산맥의 각지에는 옛부터 문명이 존재했지만, 잉카는 대부분 동안 고립되어 있었다고 연구 공동 저자 인 프란시스코 가리드 씨는 말한다.


하지만 그 시대, 잉카 제국은 안데스 전역에서 천천히 그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아마 특별하게 저항하지 않고 잉카 제국에 순응한 문명도 있었다. 이 잉카 제국에게 병탄되는 것을 완강히 저항 한 문명도 있었다.



- 구멍이 뚫려있고 턱은 부서져있는 것 같은 흔적이 있는 이상한 두개골


가리드 씨와 카타리나 모랄레스 씨는, 그러한 사례 중 하나가 이글레시아 콜로라다였다고 "Latine American Antiquity"에 게재 된 연구 논문에서 논하고 있다.


이 마을에는 제대로 묘지가 있다. 나무에 의해 보호 된 환상의 무덤이 정연하게 배치되어있고, 거기에 묻혀있는 사체에는 두개골도 몸체도 있고, 토기와 장신구도 발견되고 있다.


따라서 쓰레기장에서 두개골 만 발견되는 것은 어딘가 심상치 않은 것을 한눈에 알 수있다.


또한 두개골은 모두 비슷한 흔적이 있었다. 구멍이 뚫려 있었으며, 턱 주위에는 마치 문질러서 발생한 이상한 자국이 있었다.



- 마을에서 본보기로 밧줄에 매달린 여성과 아이들


가리드 씨에 따르면, 두개골의 구멍은 밧줄에 매달려 있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고한다. 마을 주민들에게 본보기로 한 것이라는....


또한, 매달기 전에 피부를 벗겼을 것이라고 추정하는데,,, 어쨌든 외형은 엄청나게 공포심을 자극하게 했다는 것.




4개의 두개골 중 3개는 젊은 여성, 하나는 아이의 것이다. 뼈의 밀도로 판단하면 전원이 영양 실조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있다는.


가리드 씨의 이야기는...


"마을 지도자를 겨낭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 이유는, 아마도 건강한 젊은 남성은 노동자와 군인, 또는 세금을 징수하기 위한 대상으로 제국에게는 이용가치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라는 것.


- 이글레시아 콜로라다의 통치에 문제가 생기고 있었던 잉카 제국의 사정



그러나 이 공포로 지배하는 방식은 제국의 전역에서 행해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고, 이 마을 만의 것으로 보인다는.


그것은 이글레시아 콜로라다가 특히 저항이 심했던 이유뿐만 아니라, 어쩌면 실무상의 이유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마을은 잉카 제국의 수도 쿠스코에서 멀고,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아타카마 사막에 있는 것이다.


제국으로서는, 그러한 가혹한 기후로, 게다가 지리적으로도 서투른 국경의 이글레시아 콜로라다에 그렇게 쉽게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입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을의 통치에 문제가 발생했었을지도 모른다.


한편, 기골있는 마을의 주민은, 당연하지만 어려운 환경을 살아가는데 지혜를 가지고있다. 이때문에 침략자에 대해서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었다. 마을은 얌전하게 따르려고 하지 않았고, 제대로 조치를 할 수도 없었고....


그래서 잉카 제국은 조금 무리한 방식으로 머리를 잘라 본보기를 보이려 했었던 것 같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