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의 검투사에는 "여전사"도 있었다?

고대 로마시대에 투기장에서 전사끼리, 혹은 맹수 등과 사투를 벌였던 검투사...글래디에이터.

역사의 토픽감으로 인기가 높으며, 2000년에는 동명의 영화도 개봉해 큰 인기를 끌었었다. 여기까지는 유명한 이야기, 하지만 글래디에이터 중에 "여성"도 있었다는 건 아시나요?

항간에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확실히 여성 검투사도 존재했었다는 것.

하지만, 그들은 무엇을 목적으로, 피투성이의 싸움에 뛰어들었을까요? 그리고 어떤 여자들이 검투사로 뛰어들었을까요?

 


■ 어떤 여성들이 전쟁에 참가했었나?

글래디에이터의 관습은 기원전 264년에, 고인의 애도를 위한 의식의 일원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세속화되고, 각 도시마다 암피테아트룸(원형 투기장)이 들어서게 되었다는 것. 글래디에이터들은 서로간에 결투를 벌이거나 맹수와의 싸움을 선보였고, 또 투기장에 물을 채워 모의 해전을 벌이기도 했었다.

전쟁의 박력에 민중은 열광하게 되었고, 순식간에 "구경물"로서 정착. 수천, 수만명의 검사와 동물들이 오락을 위해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380년에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이 관습에 비판적이었던 신자들의 반대로 사양길에 접어들게 되었다.

404년에는 각지의 투기장이 폐쇄, 그 후도 세세하게 계속되고 있었지만, 일찌기의 열광은 없었고, 681년에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소멸되었다.

그럼, 이러한 전투에 여성은 어떻게 참가했을까?



우선, "글래디에이터"처럼 여성 검투사를 지칭하는 정식 용어는 당시부터 없었다. 그때문에, 19세기 학자들은 들래디어틀릭스(Gladiatrix)라는 명칭을 만들었다. 글래디어틀릭스에 대한 기록은, 다양한 문서와 비문의 형태로 많이 남아있다.

고대 로마에서는, 여성을 가리키는 라틴어로서 무리에레스(mulieres, 하층 혹은 일반 여성), 루디아(ludia, 축제나 오락에 출연하는 여성), 페미니(feminae, 고귀한 여성/위상이 높은 여성)의 3가지가 있었다.

고문서에 의하면, 이 중 무리에레스와 루디아가 전투에 참가했다고 되어있다. 더구나 전투 참가는, 권력자의 강제가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이었던 것 같다. 

도대체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알아보자.

 


■ 스스로의 존엄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

이는 고대 로마의 사회적 배경과 관련되어 있다.

당시 로마는 남성 우위의 가부장제였고, 여성에게는 거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고, 이들의 권리는 파트너인 남성과의 관계로 결정되었다. 특히 여성은 가정과 결혼생활에서만 중요시되었고, 성적 정절, 양식, 남편에 대한 사랑, 부부간의 조화, 가족에 대한 헌신, 다산풍양 등이 미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위가 높은 부인이라면 모를까, 하층 계급의 여성들은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많은 고통을 받았다.

그것으로부터 전문가들은, 자립에의 욕구, 명성을 얻을 찬스, 빚의 면제등의 경제적 보수를 걸고, 글래디에이터의 세계에 몸을 던졌을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단, 이들이 남성 검투사와 싸우지는 않았다.

싸우는 상대는 같은 글래디어틀릭스였거나 동물이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대 로마의 역사가 카시우스 디오(155~235)는, 네로 황제의 어머니를 기념해 열린 제사에 대해, 여성들이 말을 몰아 야수를 죽이고, 검투사로 싸워 일부는 기뻐날뛰고 일부는 뜻에 반해 애처로울 정도였다고 기록.

"도미티아누스제(51~96년)는 종종 야간에도 경기를 치렀고, 때로는 난쟁이(몸이 작은 기형의 사람)와 여자들을 상대하게 했다"라는 기술도 남아있다.

 


그런데 기원 200년에, 셉티미우스 세웰스제(146~211년)는, 이러한 구경거리가 여성에 대한 경의 결여를 조장한다고 하여, 여성 검투사의 참가를 금지했다. 앞선 디오는 "여성들이 참전해 치열하게 경쟁함으로써, 다른 여성들에 대해서도 나쁜 농담을 하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그래도 3세기 후반이 되어도 여성 검투사가 있었던 것은, 로마 근교의 항구도시 오스티아의 비문이 보여주고 있다.

지방행정관이 투기장 전투를 위해 여성을 검투사로 제공한 내용이 적혀 있다. 터키 남서쪽 도시 보드룸의 유적에서는, 두 명의 여성 검투사를 조각한 기원1~2세기의 석판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할리카르나소스의 릴리프"라고 불리고, 2명의 검투사는, 아마존(Amazon)과 아킬리아(Achilia)라고하는 예명으로 불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1996년에는 런던 그레이트 도버 스트리트에 있는 고대 로마 유적에서 여성 검투사의 유골이 발견되기도 했다.

묘지에는 전투 경기와 관련된 물건들이 출토되었고, 유골 분석 결과 여성은 20대 였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렇게 글래디어틀릭스의 존재를 나타내는 증거는 수없이 발견되고 있다. 존엄을 위해 싸운 건 남성뿐만이 아니었다.